(인도여행 6일차) 연날리기
딱히 할 일이 없었지만, 어김없이 새벽에 갠지스 강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크리켓 경기하는 것을 구경했다.
다들 요령이 있는지 강에 공이 안 빠지게 잘하더라.
힘 조절 잘못하면 공 하나 잃어버리는 것 금방일 것 같은데, 구경하는 내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뭔가 고민이 있는가 보다......
인도 아이들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살아갈지 궁금하다.
하지만, 말이 통하질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오해 중 하나는 '인도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이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인도에 대한 얄팍한 지식을 말씀드리자면,
인도 북부지방은 힌디어, 남부지방은 타밀어를 쓴다고 한다.
뉴델리, 바라나시, 아그라 모두 힌디어라고 보면 된다.
예전에 봉사활동을 방문했던 첸나이는 타밀어를 사용한다.
(나는 사실 타밀어랑 힌디어 구분 할 줄 모른다.)
여기서부터 북부랑 남부 사람들 사이에 언어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용어인 영어는 어떨까?
아쉽게도 영어를 구사할 줄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한가 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보면,
주로 중산층 혹은 그 이상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할 줄 안다.
대학생들은 거진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보면 된다.
또는 관광업에 종사하여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 사람들이 할 줄 안다.
정말 특이한 것은 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뭐, 대학생이나 중산층들은 배워서 잘한다는 것이 특별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전으로 익혀서 습득한 영어이다.
그런데, 인도 사람들의 언어 관련 능력이 뛰어난 것인지, 배우지 않고 습득해서 배웠다 하더라도 매우 유창하게 구사한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불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인도에는 언어 능력자들이 천지다.
3개 국어는 기본이요, 5개, 6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에서 인접국가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본 적은 많지만, 그래도 유럽 국가들끼리는 언어가 매우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여기 인도 사람들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부터 시작해서 영어, 불어, 독일어, 등등, 모국어와 전혀 관계가 없는 언어들도 매우 잘 구사한다.
특별한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부끄럼 없이 외국인에게 다가가고, 질문하고 말 거는 문화적 영향도 큰 것 같다.
여태껏 코브라 할아버지를 못 보다가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보았다.
코브라 좀 구경했다고 300루피를 달라고 하는데, 날강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냥 무시하고 내가 주고 싶은 만큼인 50루피만 주고 왔다.
여행지에서 뭐 사기 전에 가격 물어보는 것 기본인데, 그걸 모르다니.......
그럼 공연하기 전에 300루피를 받고 시작하던가.... 저 할아버지 하수다.
나라면 사람들을 모아 두고 금액이 일정 수준에 달하면 공연을 하겠다.
10루피 내더라도 코브라 때문에 쫒아가서 잡을 수도 없다.
새끼 염소들이 힘겨루기 하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낮에는 가트 이곳저곳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항상 노을 지는 풍경을 가트에서만 보았는데, 갑자기 옥상에 올라가서 보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해가 질 시간에 맞춰 숙소 옥상에 올라가 봤다.
예상치도 못한 장관을 보았다.
해가 질 시간이 되자, 주민들이 하나 둘 옥상에 올라왔다.
그리고는 다들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눈으로 보면 정말 많은 연들이 있다.
아쉽게도 스마트폰 카메라로 잘 담을 수가 없었다.
마치 연들이 엄청난 수의 새 때나 박쥐 때처럼 아들을 점점이 수놓았다.
실제로 보면 연이 두배는 커 보이고, 연의 수도 두배는 더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어 보이는데,
해 질 녘 옥상에 올라와 연을 날릴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니 한 것처럼 말이다.
인도 사람들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이렇게 혼자서 연 날리는 장관을 구경하는데, 우리 숙소 직원도 올라와서 연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게 어떤 행사나 축제냐고 물어봤다.
아니란다. 그냥 매일 이렇게 사람들이 나와서 연을 날린다고 한다.
축제도 아닌데, 매일 같이 나와서 연을 날린다고?
적어도 인도 사람들은 여유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듯했다.
일하다가, tv 보다가, 스마트폰을 하다가, 하루를 마칠 시간인 해 질 녘 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옥상에 올라와 노을을 보며 연을 날리는 것.
내 눈에는 어스름한 저녁 박쥐 때가 사냥을 나가는 자연의 현상만큼이나 신기하고 경이롭게 보였다.
이 시간에 나는, 우리 가족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만원 지하철과 버스에 실려, 쏟아져 나올듯한 스트레스를 이어폰으로 틀어막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나마 이 시간에라도 집에 올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빛이라고는 스탠드 조명밖에 없는 어두컴컴한 독서실에서, 해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밖에는 어떤 바람이 부는지,
어떤 꽃과 풀이 나고 있는지 모른 채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각박하게 살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 다시 돌아가면, 이런 시간도 없겠지 싶었다.
또다시 몇 년간 해가 뜨는 모습도, 지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겠구나 싶었다.
취직을 하고, 시간이 나서 놀러 왔음에도, 미래에 놓여있는 뻔히 보이는 각박한 생활이 그려져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내 인생에 다시 이렇게 자유로운 시간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일 것 같아 서글펐다.
(저렇게 멋진 풍경을 놓고도 즐기질 못하다니.....)
해가 졌다.
골목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